그리스도 교육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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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7세기말의 로렌 지방은
프랑스 왕의 소유지와 독일 제국의 소유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고
사상적, 정치적, 종교적 위기상태에 있던 유럽의 군대가 통과하는 지역이었기에 전쟁터였다.

오랜 국경 분쟁으로 주민들은 가난과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었고
교육의 기회와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은 윤리적 탈선에 빠지는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특히 어린이와 여성들의 교육에 대한 절대적인 필요성이 요청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6)의 교육에 대한 법령으로 종교 교육기관의 설립이 권고되고 교회에서 오랜 전통으로 해 오던 학교(수도원학교, 주교학교, 수도자 학교들) 형태에서 새로운 형태의 학교, 시골의 소학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1720년, 성 요한 학교와 성녀 제노베파 학교가 설립되고 바틀로 신부는 동생 마리아, 프랑소와즈, 바르브를 불러 제노베파 학교에서 여교사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자매들은 바틀로의 딸들 이란 뜻으로 '바틀로트'들이라 불리어졌고 사적으로 정결서원을 하기 시작했다.
바틀로 신부가 학교 운영 책임자로 공식임명을 받았고, 학교가 늘어감에 따라 교사양성의 요구도 늘어났으며 그에 맞추어 더 많은 교사들을 양성하게 되었다.

신부님은 모든 교사들이 자신의 신앙과 교수법을 더 가다듬기 위해서 1년에 한 번은 꼭 피정을 하게 했다.
이후 마리아 바틀로트는 바틀로 신부를 도와 모원운영을 하게 되고 후에 프랑소와즈 바틀로트가 언니의 뒤를 이어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751년에 수녀들은 200명 이상 되었다.
1700년대 말, 프랑스 혁명과 유럽의 전쟁으로 학교 교육에서 종교가 배제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수녀원도 해체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혼란의 시기에도 수녀들은 성소를 잃지 않았으며 새로운 장소, 현 수녀회 모원이 있는 낭시(Nancy)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1844년 수녀들은 교구의 공식인가를 받았고 처음으로 공적인 유기서원을 발하게 된다.
1853년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회원 수는 1200명으로 되었고 프랑스에 405개의 분원과 벨기에 12개 학교, 룩셈부르크 7개, 알제리 24개의 분원이 생겨났다. 교구소속 수녀회이던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는 1929년 3월 12일 교황 비오 11세의 최종 인준을 받아 교황청 소속 수녀회가 되었다.

1948년 가난한 이들과 미소한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려는 의지는 새로길을 찾게 되었고 신생교회들의 요청에 응답하여 초창기 바틀로트들처럼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수녀들은 1966년 한국의 안동지역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진출하게 되었다.